<시민연극교실> 회고 [20200127]

 

12월은 정말 빅이벤트, 빅데이들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하우올리 설립과 초기셋팅, 개인법인의 개발부지 매입, 연습과 리허설, 2일간의 공연, 그리고 바로 이어진 구성원들의 출근, 그 와중 내 생일과 친구, 친척들의 결혼식까지. 그리고 바로 이어진 3주 간의 유럽여행. 귀국 후 바로 이어지는 많은 업무 속에 시민연극교실과 공연에 대한 회고가 늦어지게 되었다.

<시민연극교실>의 경우 2019년 한 해 내게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고, 끼친 영향이 많을 듯 한데 너무나 많은 이벤트들이 계속 몰아쳤던 시기였고 요즘도 그래서 그 임팩트에 대한 가늠이 사실 잘 안 된다. 더 이상 늦어지긴 전 그냥 지금 남아 있는 회상들에 대해서라도 기록해 두려 한다.

 


 

# 01. 여기 다시 연극

 

☞ 여기다시연극 [20190715] http://jangjaeyoung.com/archives/449

 

글을 쓴 뒤로도 매주 수요일 어김없이 우리는 모였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는 남과 다를 바 없이 어색해진 군집이지만 그 당시엔 그래도 매주 보면서 그래도 서서히 정이 들어갔나 보다. 그렇게 서서히 알아가면서 프로그램도 진행이 되었다.

 

      • 08월ㅣ작품 논의 –> 작품 선정
      • 09월ㅣ작품 분석 –> 대본 리딩 -> 오디션 진행 –> 배역 선정
      • 10월ㅣ캐릭터 분석 -> 대본 리딩
      • 11월ㅣ대본 암기 -> 대본 수정 -> 동선 맞추기 -> 연습 -> 연습 -> 연습
      • 12월ㅣ리허설 -> 리허설 -> 리허설

 

그렇게 수영장 한번 못 가본 여름이 지나가고, 단풍구경 한번 못 가본 가을이 지나가고 스키장 한번 못 가본 겨울이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 빠지긴 했지만, 시작할 때부터 가급적이면 반드시 참석하자고 다짐하였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소중한 기회이고 돌이켜 보면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잘 알기에.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해야 했기에 뒷풀이를 빠진 건 아쉬웠지만 모든 걸 다 잡을 수는 없었다.

 

 

# 02. 작품 선정, 오디션 그리고 배역 선정

 

[작품 선정]

40명 정도의 인원은 2팀으로 나뉘게 되었고 우리 팀은 <굿닥터>라는 작품을 다른 팀은 <맥베스>라는 작품을 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맥베스> 팀에 속하게 되었다면 참 동기부여가 안되었을 것 같다. 주인공 위주의 서사라 캐릭터 별로 비중이 워낙 다른 극이기도 하고 고전이었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비중의 배역을 맡으며 조금 더 연극을 경험하길 바란다는 사려 깊은 연출 선생님의 배려로 인해서 우리는 단막극 형식의 <굿닥터>를 하게 되었고 그 한 막에 대해 나는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고 참여자들에게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되었다. 공연이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출 선생님의 고민과 배려를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번 참여한 공연들에 아쉬운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를 통해 그게 모두 다 해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1. 많은 대사량을 통해 조금 더 무대에서 많은 앙상블들을 경험해 보기, 2. 한 마디 하고 끊기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대사들을 통해서 극을 쌓아나가는 경험 등

 

[오디션, 배역 선정]

<굿닥터> 중 6개 단막극을 각색하여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대본리딩 등을 통해서 각자가 원하는 캐릭터 등에 대해서 의견을 받고, 오디션을 진행하였다. 당일 나름 긴장감 있게 진행되었던 기억인데 어쨌든 재미난 경험이었다.

내가 원하는 1순위, 2순위, 3순위가 다 안되고 결국 4순위가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배역을 맡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금고의 조합장 역할이었는데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다.

 

a. 대사량이 많다

: 많은 양의 대사를 암기하여 연기하는 경험, 상대방과 대사를 연속적으로 주고 받는 앙상블의 경험, 대사 자체가 많아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의 경험 등 이전에 가져보지 못해 아쉬웠던 부분이 많이 해소될 수 있었다.

 

b. 상대 배역을 맡은 분의 실력이 좋았다

: 학원 강사를 하셨던 분인데 표현력과 발성 등이 좋으셨다. 내게 있어선 (상대방에게 누가 되면 안되니) 자극이 되기도 하고 상대방의 표현에 잘 반응할 수 있어 내 연기에도 조금 더 도움이 되었다.

 

c. 감정의 기복이 심한 캐릭터이다

: 권위적인 상사의 모습, 가식적인 고객응대 모습, 점점 화가 나다 그 화가 폭발하는 모습, 혼이 빠져 넋이 나간 모습 등 “조합장”이란 캐릭터는 짧은 단막극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을 보여야 하는 어찌 보면 조금 어려운 배역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배역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래서 이 작품과 배역을 많은 것이 너무나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다. TMI이지만 너무나 많은 이벤트들이 벌어지며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게 당연한 시기였을 텐데 매일 연습 때마다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다 보니 내 속의 화가 다 사라지며 일상에서 평온하게 문제들을 차근히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

 

 

# 03. 대본리딩, 그리고 부산사투리

 

오디션 전에도 오디션 후에도 대본리딩은 좀 긴장되고 부담이 되었다. 부정확한 발음과 발성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 연극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겁을 먹게 되면 오히려 움츠려 들게 되고 여기 이 순간에 연극을 하게 된 취지가 퇴색이 되는 걸 알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그 순간에 집중해 대본리딩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제안을 하셨다. 조금 모자란 사람들의 코믹극이기에 전원 경상도 사투리로 대사를 진행해 보면 어떨까 한 것이다. 이번 연극의 주된 목표 중 하나가 서울 표준어로 된 배역을 맡아 대사를 하는 것이었기에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와 제안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가 있어 이 부분만은 도와달라고 하며 결국 기존대로 표준어로 된 대사로 대본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그 덕분에 연습과정에서 발음과 발성 등에 대해 많은 지적과 우려들을 들어야만 했지만, 어쨌든 난 원하는 바를 성취하였고 다행히 그 여정을 잘 마무리 하여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관객이나 선생님들의 만족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굉장히 만족할 수 있게 된 여정이고 결과였던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아쉬움이 없다 보니 여한이 없어졌고 심지어 애정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 04. 12월의 쉽지 않던 여정

 

[may I excuse?]

앞서 이야기 했듯 빅데이 빅이벤트들이 몰아치다 보니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순간들도 오게 되었다. 연습량을 늘리기 위해 낮에도 연습시간이 잡히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은 자연스레 밤이나 새벽에 시간을 내어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스케쥴들을 조절하다 상대 배역을 맞은 분에게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였는데 그 원인의 정도에 비해 상당히 무례하게 행동하셔 기분이 많이 나빴지만 어쨌든 감정적으로 서로가 다치면 연기와 연습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공연 날까지 웃으며 마무리 하였던 것 같다.

만약 그 당시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난 나머지 나도 똑같이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면 그랬다면 나 또한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을 것 같다. “어쨌든 화를 내면 니만 손해다” 라는 어머니의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다. 앞으로도 잘 염두 해나가자.

 

[딜레마]

스케쥴링을 겨우겨우 조절해 나가다가 결국 막지 못한 게 하나 있었는데 무대 스탭 분들과 함께 진행하는 테크 리허설 때였다. 조명, 음향 등의 무대 스탭 선생님, 전 출연진, 연기 선생님들 모두가 함께 하며 처음으로 리허설을 가지는 날이었는데 마침 이 리허설 날짜와 시간이 박소피의 결혼식과 딱 겹치는 것이다.

(사실 디벨로퍼 모임의 송년회도 반드시 참석해야 했던 거라 다른 리허설을 불참할 듯하였는데 이것마저 빠졌다간 정말 사단이 날 듯해, 송년회에도 많은 분들께 미안함을 가지고 인사만 드리고 먼저 빠져 나오게 되었다.)

“배우들은 공연 중에 가족들의 장례식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와 같은 간접적인 압박과 “어떻게 이걸 빠질 수 있냐”와 같은 짧은 성토 등 따사로운 눈초리를 뒤로하게 결혼식을 참석하게 되었다. 짜이서울의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한 동료들의 경조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가서 그 순간에 함께 존재한다 라는 지난날 했던 스스로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조언을 넘어 강압적으로 일정에 대해 강요하는 상황도 발생했는데 그건 정말 아닌 듯하였다. 연극이 아무리 소중하다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혼식이 더 우선순위였다.

어쨌든 참 미안하고 난감했던 순간들이 연속되던 시간. 그 당시엔 나도 막막하고 또 속상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을 만큼 살짝 후회되기도 하였는데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그렇게 결정했을 것이다. 하우올리를 시작하며 앞으로는 더욱 더 그렇게 excuse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익숙해 지고 담대해 지려 노력하자.

 

[앙상블]

지난 2번의 과정에서 경험하였지만 연습하다 보면 마냥 웃고 좋을 수만은 없다. 오히려 서로 긴밀하게 작업들을 완수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마찰음과 파열이 발생해 나간다. 세 명의 배역이 함께 준비하는 연습과정도 아주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연기와 동선 들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들이 있었고, 대부분 원만하게 협의와 절충을 해나가려 했지만 그렇게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결국 공연을 잘 치르는 것이 우리의 큰 목표이기 때문에 대놓고 화내지는 못하지만, 종종 서운해 하고 삐쳐있는 기운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나 포함해서 말이다. 다른 팀들도 들어보니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라 한다. 한 평생 다른 삶을 살아왔던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밀도 있게 어우러지려 하니 오히려 쉬운 게 이상할 것이다. 이해하고 포용하려 했건만, 여전히 이해 안되고 지치는 부분도 있긴 하였다.

하지만 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한 상태였다. 나의 목표는 오직 이 분들과 치열한 연습과정을 통해 무대에서 온전히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기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들과의 앙상블, 나아가 이 분들이 잘해야 내 연기도 살아나는 것. 본의 아니게 팀플레이에 대해 지독하게 경험하고 고민하게 된 시간들이었다.

 

 

# 05. 무대 위에서 온전히

 

[두 번의 공연]

이번 시민연극교실이 또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공연을 두 번 한다는 것이다. 그 간의 공연들은 딱 한번 밖에 하지 않아서 똑같은 연기를 여러 번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인지 잘 알지 못하였는데 토일 양일 간의 공연을 하며 지난번 1회성(?) 공연 때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도 느꼈다.

    1. 장기 공연하는 배우 분들 대단하다 : 장기 공연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기계처럼 반응하게 되기도 한다는데 어쨌든 비등한 에너지를 가지고 여러 날 연기를 해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각자가 가진 탤런트가 있는 듯하다 정말.
    2.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다 : 나도 바뀌고 상대방 또한 바뀌기에 같은 공연이고 대사라도 어제와는 다른 느낌으로 오늘을 공연하게 되었다. 연기를 하는 도중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재밌고 신기했던 경험. 그리고 관객도 달랐다. 어제와 오늘의 관객에게 느껴지는 기운도 조금 다른 듯하고 같은 포인트에서 반응하는 방법도 달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공연 전날 리허설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연습을 하고 대사를 보며 생각했던 감정과 동선과 리액팅들을 나 또한 몰입해서 흔들림 없이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리허설이 끝난 후 만족을 하였고 지켜보던 선생님들도 제일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첫 날에는 상대 배역 분께서 중간에 대사를 까먹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둘째 날 공연의 경우에는 다시 전날 리허설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연기를 하였고 관객과 선생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사실 그래 봐야 아마추어의 연기일 뿐이고 나 스스로의 실력과 한계를 알기에 동네 조기 축구에서 실력 좀 발휘한 것뿐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실력을 넘어 전달 된 것에 감사해하고 나름 만족할 뿐이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다시 경험하였다. 히말라야 정상에서와 같이 바로 그 순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느낌.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들. 그러고 보면 참 숨가쁜 만큼 아름다웠던 12월이었다.

 

 

# 06. 여한이 없어졌다.

 

남들이 보면 상당히 부족할 지 몰라도 내게는 상당히 만족한 무대였고 과정이었다.

 

    • 많은 대사량
    • 두 번의 공연
    • 연속되는 대사를 통한 앙상블
    • 서울 표준어 대사
    • 실질적인 움직임과 함께한 공연

 

이렇게 그 간의 아쉬웠던 모든 부분에 대해 모두 충족시켜주었고 다행히 무대 위에서도 원하는 바 대로 잘 연기가 이루어지고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정말 여한이 없어졌다. 이전의 공연 때마다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 새롭게 연극에 참여하며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갈증들이 이번 공연을 통해 말끔히 해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간 뒤 나 스스로의 한계도 알게 되었기에 공연을 마친 뒤, “아 할 만큼 했구나” 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간 갈구하고 추구해 오던 것에 대해 여한이 없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매우 좋은 의미에서의 아름다운 작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연극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 07. 아프고 아쉬운 기억

 

여한이 없다는 표현을 할 만큼 좋았고 만족스러운 기억도 가득하지만 아쉽고 또 아프기까지 한 기억도 있다. 더욱이 그 상처가 연극과 연극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극을 하는 집단에 대한 것이라 좀 아쉬울 따름이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곳]

이번 시민연극교실을 통해 서울시극단이란 단체를 다소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속에 속해 있는 배우님들의 일면, 그리고 배우 분들 이외의 조직 구성원들, 나아가 그 조직에 대해서도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게 된 것 같다.

 

☞ 여기다시연극 [20190715] http://jangjaeyoung.com/archives/449

 

에 썼던 것처럼 국립극단이나 시극단의 운영의 경우 그저 안 좋은 쪽으로 볼 것만은 아니었다. 극단의 주니어라고 할 수 있는 연수단원 분들의 경우는 실제로 각 대학별로 에이스들만 담당 교수님들의 추천에 의해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큰 무대에서,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전통과 권위의 기반 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배우로서 매우 좋은 기회이자 큰 경험으로 보였다.

물론 이 부분은 연출, 작가, 스탭 들에게도 해당 되는 듯 하였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연극을 한다고 말하며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으쓱해질 정도이니 이 곳에서 근무하고 무대에 서는 사람들에겐 오죽할까?

역으로 보았을 때 대학로의 사람들은 그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울화통이 터지고 한이 많다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었다. 내가 그 동안 알아왔던 연극의 생태계가 조금은 편협했구나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큰 무대를 위한 큰 시스템, 그리고 큰 조직. 그 조직 속에서 난 대기업 인턴생활 때 하루하루 느끼던 아쉬움도 오랜만에 느끼게 되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베이징대기업 인턴 근무 때 사람들 간의 가식적이고 정치적인 행태에 대한 회의였는데 어찌 이 곳에서 다시 느끼게 되다니 신기하면서도 좀 아쉬웠다. 예술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근거로만 하는 일이기에 어쩌면 더욱 정치적일 것이라 란 선생님의 말씀도 이해가 갔다. 그들 또한 각자 추구하는 바를 위해 이러한 조직에 있고 조직을 활용해 나가는 것이었다.

배역 선정과 운영 등에 따른 연출과 배우의 앙상블, 연기철학과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의견에 따른 배우와 배우 간의 앙상블, 신구 배우들 간의 앙상블, 배우와 스탭 들간의 앙상블, 조직 외적으로 사적인 일들을 진행함에 따르는 앙상블 등등. 아주 세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보고 듣고 옆에서 경험하며 느낀 이 조직에서 행해지는 앙상블들이 생각보다 건강하지 못하단 느낌이었다. 분명 이 뿐 만 아니라 다른 극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규모가 클수록 더 할 것이다. 뭔가가 곪아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최근들어 온도 차에 의해 원룸 도배지 뒤 석고보드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처럼 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실 이러한 생각들을 느끼게 되면서도 내 코가 석자인지라 그냥 넘어가고 스쳐가며 연습에 집중해 가던 중 사건이 하나 터졌다.

최종 리허설 때인데 한 선생님이 전체 통솔 하던 와중 사람들이 마음대로 따르지 않자 주니어 배우 분과 무대 스탭 분들에게 화를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엔 지난 과거의 여러 응축된 갈등들이 내재된 여러 암시들이 있어 결코 이 사안이 충동적인 게 아님을 짐작하게 하였다.

생각보다 건강하지만은 않은 어쩌면 내가 그 간 접해왔던 조직들 보다 어쩌면 더 아픈 곳이 여기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을 통해 시민들에게 해당 건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는 카톡 소식은 단톡방을 통해 전해져 왔고, 현명한 처사인지 애써 이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 때문인지 회피하기 위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사람들도 그 뒤 이 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다음 날이 무대로 사실 공연을 잘 치르는 게 최우선임을 다들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폭력적인 일은 덮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만든 연출 선생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든 시민들을 위해 나가고 공연을 위해 애쓰는 듯, 아니 척해 보였다. 놀랍게도 시민들은 하나같이 다시는 그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이번 세종문화회관의 겨울 공연에서 주연을 맡아 발랄한 캐릭터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것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배려해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한 번의 실수로 모든게 망가지단 참 아쉽다. 그리고 적어도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뒤 늦게라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처신은 실망을 넘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진실의 순간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는 진실되게 살아야 한다 가르침. 그 가르침을 주었던  처음 참여했던 극단에서의 스승과 같던 당신들이 결국 반목 속에 헤어지게 되며 내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진실됨에 대한 중요성은 연극을 하며 또 연극을 보며 내게 중요한 가치로 자림 매김 하였었다.

하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굉장히 큰 실망과 진실은커녕 가식됨을 목격하면서 배우에 대한 존중과 동경은 사그리 사라지게 되었다. 아니 자신의 표현욕과 명예를 위해 자신의 끼를 가식적으로 발산하는 존재가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조금 내 마음 속에 생겨나게 되었다.

 

 

# 08. 애정도 식어버렸다.

 

연극 참여에 대한 여한도 없어져 버리고 배우와 연극의 생태계에 대한 실망감까지 생기고 나니 연극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게 되었다. 2017년 백수시절 연극을 접하게 되며 가져온 연극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포부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시민들의 연극에 대한 참여와 이해도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시민연극교실>의 취지인데 덕분에 연극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건 참 슬프고도 아이러니 한 일이다.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감동 받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그 수동적인 감상에 의한 감동 자체가 가식일 수 있고 그게 내게 주어지는 상처를 알기에 다가가기 힘들게 되었다. 그 대신 믿을 수 있는 건 여전한 자연과 그리고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감동을 추구해 나가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과정과 성취를 통해 감동을 받고 싶어 2020년 한 해에는 정말 몰입해서 일을 해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단순한 일을 뭐 이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파생시켜 나가냐 생각할 수 있을텐데, 그만큼 난 진지하게 연극을 대했고, 그래서 난 그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왔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또 마음을 돌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09. 응, 그리고 또

 

[라테는 말야]

“시민”연극교실이란 특성 상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정확하게 안분한 듯하였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많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40대 이상의 분들은 왕년에 대한 자랑 그리고 자만감을 가진 분들이 종종 보였다.

내가 보기엔 대단한 성취가 아닌 듯해 보였는데 당신들에겐 대단한 성취로 보였으며 심지어 남들을 얕보기 까지 하였다. 하긴 내 주변만 보더라도 일정한 성취를 이룬 친구들이 그런 경우가 있기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경향은 심해지는 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조심하고 경계해 나가도록 하자.

 

[내 프로필에 대한 선입견]

조금 친해진 뒤 서로가 하는 일을 물어보자, 부동산개발 사업을 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아래와 같았다.

 

와, 젊은 나이인데 건물이 있다니 돈이 상당히 많나 보네요.

흠 그거 무섭고 나쁜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쩝, 좋은 곳에서 양주 마시며 미팅하시겠어요.

휴 사업하는 사람들 부러워요. 돈을 많이 벌잖아요.

 

업을 처음 접했을 때 주변 지인과 가족들이 했던 반응을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듣다 보니 나오는 순수한 반응들.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데 업 속에만 빠져 있다 다시 업 밖의 사람들과 접하며 오랜만에 반응을 접하다 보니 조금은 씁쓸하였다.

세상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다른 생각으로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되, 절대 나를 잃어버리지 말자.

 


 

# 10. 어쨌든 감사하고 그리운 순간들의 기록들

 

후반부에 아쉬운 이야기들도 써내려 간 듯한데, 어쨌든 이게 내가 겪고 느낀 경험들이기에 좋았던 순간들에 대해 굳이 미화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고 배움이었다. 그리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정말로 감사하게 뽑아 주셔서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고, 바쁜 와중 최선을 다해가며 집중하고 몰입해 원하는 것들을 얻었고 많이 배우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 소회의 결과가 연극에 대해 여한이 없어지고 애정이 사라지는 것이더라도 사람이 바뀌는 거 쉽지 않다. 어쨌든 나에게도 작지 않은 변화를 주게 된 여정이었다. 어쨌든 감사하고 그리운 순간들의 기록들.

 

 

 

끝.

 

글쓴이

James Jang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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