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엔 진주회관 콩국수지
내게 최애 맛집을 꼽으라면 골목식당이나 시장 바닥의 음식점들이 먼저 떠오른다. 명동교자, 을밀대, 하동관, 진주회관, 통영 중앙시장, 베트남 노상의 분짜 한그릇, 우한 뒷골목의 마라탕 한사발 등. 불편함을 줄 때도 있지만 그 원초적(?)인 맛의 강렬함은 늘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편이다.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서울시극단 등과 같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극단의 공연들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위의 골목식당 보다는 호텔 레스토랑과 가까운 느낌이다. 우아한 인테리어 내에 격식을 갖춘 사람들 속, 품격을 높이는 서빙과 음식. 플레이팅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맛도 괜찮고 기회를 떠나 폭망(?)하는 케이스가 잘 없는 듯 하다.
큰 규모의 무대, 편안한 객석, 다채로운 출연진, 매끄러운 무대효과 등 정부 운영 극단의 공연들을 보면 즐겁고 기분 좋은 감동을 주지만 아쉽게도 강렬한 한방은 없었던 것 같다. 내게 연극의 재미와 깊숙한 울림을 준 것은 어둡고 쾌쾌하기까지 한 선돌극장, 혜화동일번지, 연우소극장 등지의 소극장에서 쭈그려 앉아 숨죽여 본 극단들의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편안한 장소에서의 때론 거친 듯한 강렬한 야성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두고두고 여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호텔 레스토랑에 미슐랭 별이 몇 개라 하더라도 내 취향은 골목식당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정부 운영 극단들의 작품들은 연극 관람을 시작한 초기에는 빠지지 않고 갔었지만, 최근에는 많이 걸렀던 게 사실이다. 내면의 취향들의 경험들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 쌓여 이제는 나만의 연극을 고르고 즐기는 방식이 되었다.
# 옥상 밭 고추는 그게 아닌데
그렇지만 내게 몇몇 인상 깊었던 정부 산하 극단의 작품들도 있었다. 바로 <옥상 밭 고추는 왜>와 <그게 아닌데>이다.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시대상을 잘 담아내며 훌륭한 무대장치와 동선으로 그 의미를 극대화하였고, <그게 아닌데>의 경우 사실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100% 이해되었던 건 아니지만, 연기를 잘 모르는 나 조차 흠뻑 빠져들며 정말 연기 잘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감탄하며 보았던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김광보 연출님의 작품이란 것이다. 연극계에서는 매우 유명하신 분이라는데 사실 난 공연들을 본 후 연출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연출님이 총 감독으로 계신 서울시극단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진주회관 콩국수의 야성이 신라호텔 한식당에선 어떻게 버무려질지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주) 엄밀히 말하면 <그게 아닌데>는 사실 정부 산하 극단의 연극은 아니고 극단 <청우>의 작품이긴 하지만 김광보 연출님께서 서울시 극단에 재직을 하실 때 본 작품이기에 함께 이 범주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 시민연극교실 그 세번째 도전
서울시 극단에서 작품을 올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시민연극교실>. 6개월 동안 연출님을 비롯한 극단 소속 배우님들과 함께 여러가지 프로그램 속에 배움을 얻고 또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며 연말에 공연을 올리는 행사가 어느덧 11기에 접어 들었다.
수능도 재수까지 밖에 못해본 내가 이 프로그램은 세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시기를 깜빡 놓쳐서, 2018년에는 열심히 작성하였지만 고배를 마셨고, 다시 2019년에 공고를 보고 두가지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첫번째 고민은 일에 집중을 해나가야 할 시간인데 여유부리며 연극 따위(!)를 해도 되느냐 였는데, 새롭게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다짐하였던 것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 인생에 20%의 비중은 연극과의 접점을 유지해 나가보자는 것이었기에 6개월의 여정에 대해 (만약 함께하게 된다면) 참여해 보자 결정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 고민은 좀 구차하긴 한데, 서울시극단의 <시민연극교실>은 평균 3:1 정도의 선발 경쟁률을 보이는데, 일반인들의 연극과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기에 참여자 선정에 있어서도 연극 관련한 프로그램에 참여 경험이 없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걸 알고 있었다.
우선 다시 지원해 보기로 결정하고 나니 너무나 참여하고 싶은 나머지 유사 프로그램 참여현황에 참여 경험이 없다고 작성할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 까지 하였다. 있다라고 해버리면 바로 떨어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깐의 유혹에서 깨어나 내 인생에서 연극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며 떨어질지 언정 진실되게 다가 가련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하였고 참으로 다행히 선발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되게 나아가려는 자세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이번 케이스는 내 삶에 또 당분간의 에너지가 될 듯하다 🙂
1. 이번이 세 번째 도전입니다.
작년에는 떨어졌고, 재작년에는 시기를 놓쳐서 지원을 못했습니다. 아쉬움과 함께 1년을 보내다 봄과 여름 사이 2019년의 새 기수를 기다리며 종종 서울시극단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교육참여 경험이 없으면 합격에 유리할까 생각하며 너무 참여하고 싶은 나머지 참여경험에 “없음”이라고 적을까 순간 유혹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진실된 삶을 추구할 수 있었기에 연극에 대한 욕심을 위해 그 진실됨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런 꾀를 통한 참여를 의미 없단 생각이지만 너무나 하고 싶은 간절함에 쓰다 지우다를 반복 했습니다. 그만큼 시민연극교실에 꼭 참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2. 더 좋은 삶을 위한 연극
좋은 연극을 접하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 좋아하는 연극들을 더 잘 이해하고 감동받고 싶어 직접 배우도 되어보고 연극을 업으로 하는 분들께 여러 이야기와 가르침도 듣고 싶어 이렇게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인연이 되어 참여하기 된다면 그를 통해 받은 에너지를 주변에 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꼭 함께할 수 있길 고대하고 희망합니다.
11기 <시민연극교실> 지원서 中
# 소중한 기회와 인연
고대하던 개강날. 30여명의 사람들과 10여명의 극단 관계자 분들이 모여 서로 얼굴을 나눈다. 꽤 어색할 수도 있는 분위기일 텐데 다들 그럼에도 마음을 열려고 노력한다. 6개월 동안 그 노력이 지치지 않고 더 열려 나갔으면 좋겠다.
각자의 소개들을 이야기 하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였다. “온갖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구나” 하는 낙타상자의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여기에 참여할 정도면 다들 사연들이 있을 거다. 존재의 고민, 권태로움, 허무, 연극에 대한 관심, 분출의 욕구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준비하는 분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배려도 느껴져 참 고맙기도 하였다. 좋은 환경, 풍족한 지원 속에서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참여의 의미를 잘 생각하며 원하는 것을 잘 일구어 나갔으면 좋겠다.
# 여기 다시 연극
첫번째 수업이 끝난 뒤 돌아오는 길 작년 이 맘 때 쓴 글 하나를 읽어보며 광화문 광장을 걸어갔다.
고래와 함께한 여름. (jangjaeyoung.com/archives/122)
지난 여름의 뜨겁고도 지나한 여정. 그 6개월의 기간 거치며 깨닫고 변하게 된 점들 몇 가지를 꼽자면
연기를 못한다는 걸 인정하자 : ㄷㄷㅇ배우가 될지언정 스스로 노력하고 즐겨나가자. 어렵게 찾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108배 : 불교신자는 아닐지언정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승가사의 108배는 작지 않은 위안이 되어나간다.
명상 : 나를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물리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기 보다 정신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 변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명상. 자주는 아니지만 노력해나가고 있는 중
느긋하게 스마일 : 내 안의 화가 사라졌다. 가끔은 너무 느긋한 나머지 오기와 열정이 식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조급함과 불안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없어졌다
온갖 사람 온갖 일 :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삶의 스펙트럼이 넓다. 우린 결국 설국열차의 기차칸 안에서, 서로의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굳이 나서서 냄새를 맡을 필요는 없고 냄새를 이해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어디에 있든 내가 중심이고 변방이니 나 자신을 지켜나가는 걸로.
연극을 하러 갔지만, 내 자신의 부족함을 돌이켜 보고,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감사한 시간.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들을 얻고 일상에도 변화를 많이 오게 한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그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번 여정도 순간에 집중해 나가며, 돌이켜 보며 느낀 아쉬움 들을 이번 여정에서는 조금은 줄여 나가보도록 하자.
고래 아니 고추와 함께하는 여름. 여기 다시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