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20190323]

# 간만의 연극나들이

고대하던 스키 대신 공사현장에서 보낸 숨가뿐 겨울. 중요한 시간이고 집중이 필요했기에 근 3개월 정도 연극에 관심을 두지 않고 수없이 처리해야 할 일들 중 우선순위 높은 것들만 가려내어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니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어가며 그렇게 봄이 왔다.

모처럼의 여유 속 오랜만에 연극을 예매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명동을 향했다. 더욱 눈에 띄게 늘어난 동남아 관광객의 모습에 놀라고, 그리운 명동교자의 칼국수를 즐긴 후 입장한 명동예술극장 최고 명당자리 6열 13석에서 본 연극,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프랑스에서 수 많은 작품상을 수상했고, 2019년 국내 최고권위의 연기상을 받으신 대배우님의 공연이었기에 일부러라도 무심한 채 아무 정보 없이 공연을 보러가는 나도 조금은 기대를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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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품과 물개박수 사이

연극들을 계속 보다니 그래도 나만의 취향이란게 생겼다. 외부의 평론이 어떻건, 누구에서 연기상과 작품상을 주건, 관객이 많건 적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나 스타일이나 장치나 기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건 연극을 보면 볼수록 나의 취향과 관점도 더욱 정교해 가는 것 같다.

연극은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2시간의 여정. 이게 왠 걸? 시작 10분 만에 내 스타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무대미술이나 배우들의 의상, 번역투의 대사, 움직임, 중극장의 활용도 등. 인내심을 가지며 지켜보려 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내 초기 촉은 더 확고해 지는 동안 연극은 점점 극의 피치를 올려갔다.

그렇게 지나간 120여분의 시간. 주변에서 울고 웃고 하는 동안 나는 그저 2시간 동안 고립된 공간에 갇힌 외로운 양(;;)이 되어 버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 뿐. 멍하니 무대를 봐라보며 이런 저런 망상들을 이어나갔다. 현재와 미래의 고민들 그리고 희망들 심지어 불안까지.

그렇게 길고도 짧은 2시간이 지나갈 무렵. 커튼콜에 대한 박수보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순간이다. 그런데 엔딩에 다다를 때쯤 뭔가 주변에 눈물콧물 소리가 들리더니 막을 내린 뒤 내 앞의 몇 분께서는 기립하여 물개박수를 친다. 그 박수의 속도는 정말 진심 어린 감동 아니고는 나올 수 없는 리듬이다. 뭐지 이건 도대체? 거리 상으론 바로 코 앞이지만 우주 삼만리의 간격으로도 좁혀 질 수 없는 거리감이 불현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이런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의 뇌 구조는 다른 사람들과 심각히 다른가 라는 잠깐의 의문, 그리고 이런 상황과 의식 조차 피하고 싶어 황급히 공연장을 빠져 나와 지하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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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명 GAZZI

감동받았던 연극들에 대한 이야기도 잘 안 쓰는데 왜 굳이 이런 경험에 대한 글을 쓰냐면 그렇게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그 날 오전에 있었던 일들이 데자뷰 되었기 때문이다.

화곡동 현장의 경우 색다른 시도를 하였었다. 기존에 봐왔던 전형적인 원룸과 다세대 주택들의 모습이 아쉬웠기에 우리 회사, 브랜드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내외관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보려 주변에 수소문하였지만 브랜딩과 외관 디자인, (주거의) 공용공간 디자인, (원룸의) 내부 인테리어, 그러면서 시공과 설계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팀을 찾기 힘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시도해 보지 않았거나 개별적인 경험을 가진 곳들이 많았고 종합적인 것들을 이해하거나 혹은 함께 시도해 볼만하겠다 라는 확신은 업체들 간의 미팅에서 잘 안 받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사실 그런 팀들의 pool은 많은데 내가 아직 업력이 짧아 그런 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네트워크가 적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러한 시도를 함께 해보고 싶어하는 한 군데와 인연이 닿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우여곡절은 모든 인생사 그렇기에 뭐 굳이 곡절(曲折)이라기 보다 우여(迂餘) 정도로 해두자. 부동산개발에 대해 아직 경험이 많이 없는 PM, 독립시공자로서 처음 프로젝트를 맡게 된 현장소장, 주거/신축/전체디렉팅 이라는 scope을 처음 맡게 된 디자인업체. 그리고 심지어 명확한 기획안과 설계도를 가지고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중간에 계속 설계와 디자인이 바뀌고 그에 따라 시공이 바뀌어 나갔다. 돌이켜 보니 신축공사 시 건축주가 가장 피해야 하고 멍청한 방법 중 하나로 진행했던 것이다. 설계변경을 바탕으로 한 시공비 증액의 가장 좋은 먹이감이 되기 때문이다.

구조 상의 빈자리들을 감사하게도 서로가 애정과 노력으로 채워나갔다. 디자인과 시공의 빈자리를 시공사와 스튜디오가 메꿔가고, 시공사와 건축주의 빈자리를 서로 얼굴 붉혀가며 꾸역꾸역 메꿔 나가고, 건축주와 디자인의 빈자리도 몇몇 전장에서의 교전 속 메꿔나가며 감사하게도(!)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점점 외관과 내관의 모습들이 나오게 되면 많은 이들의 의견이 들려왔다. 다소 새로운, 전형적이지 않는 디자인이다 보니 더욱 그런 듯한데 적어도 이야기를 한다는 건 솔직한 자기의 마음이거나 건축주를 위해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꺼내는 것이기에 진심으로 감사해 하며 경청하려고 하였다.

많은 분들의 반응은 디자인부터 임대관리, 프로젝트의 가성비 등을 고려했을 때 아쉬운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기존의 원룸건물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을수록 더 격한 말을 쏟아내는 것은 흥미롭기도 했지만 나도 불안해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름 뛰어나다는 디자인 업체와 각 프로세스의 여러 관계자들이 애써 만든 건물인데 이게 어쩌면 “아름다운 쓰레기”가 될까 란 염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어떤 시도든 해보라고 한 처음의 그 호기는 어디 갔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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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점 출루번트 성공

그러한 걱정과 불안 속에 임대를 시작하였다. end customer 들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부동산 중개사 분들도 그들이 평소에 보는 전형적이지 않는 상품에 대해 호불호가 많았고 아마 불호가 70%는 넘었던 것 같다.

만든 사람도 파는 사람도 희망보다는 비장함을 안고 시작한 임대세일즈. 결과적으로는 2주라는 짧은 시간에 대부분의 방이 임대완료가 되었고 중개사들과 강서구 원룸 중 최단기간 임대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서로 놀라며 나누었었다. 수익형 부동산은 결국 통매가 되어야지 끝이 나는 것이긴 하지만 임차인 분들이 빠른 시간 구매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성공은 모르겠지만 실패는 아님은 증명된 것이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계약 시 임차인들을 다 만나보며 왜 이 곳을 계약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입지, 임대가 등의 의견도 있었지만 집이 이쁘다는 의견, 심지어 디자인업체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꽤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시공자나 중개사들이 고개를 흔들 정도로 싫어했던 부분이 계약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케이스도 몇 건 있었다. 화장실, 현관 입구타일, 공용공간의 조명 등인데 듣던 중개사는 정말 기겁을 하였다. 여튼 고객들은 전반적으로 이 건물의 설계나 인테리어 등에 대해 만족을 느끼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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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ㄸㄸㅇ배우

관객들과의 공감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을 대학로에서 일컫는 용어로 “ㄸㄸㅇ배우”라는 말이 있다. 공연 준비를 할 때 보람 선생님께 이 이야기에 대해 지겹도록 들었었는데 사업에서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기만족을 넘어 대중을 공감시켜야 하고 심지어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사업이다. 이 업을 시작하며 ㄸㄸㅇ사업가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진행하고 있지만 그럼 과연 어떤 고객 군의 어떤 취향을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인정한 대배우님과 스탭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준비한 공연에도 하품하며 이러한 글 따위(?)나 써대는 관객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서 만든 공간이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1) 우선 정확한 목표 고객군을 정해놓고,

2) 그들이 좋아하는 컨셉을 최소한으로 적용하되

3) 아무리 좋은 컨셉이어도 그 고객군의 역린을 건드리는 과한 것은 피하자

이다. 확장성을 위해 브랜딩을 하고 그를 위해 여러가지 우리만의 컨셉을 정하는 건 좋지만, 부동산 개발이라는 건 결국 예술이라기 보다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비즈니스고, 집이라는 상품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생활을 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지 이 공간 자체가 상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곡동 프로젝트는 niche한 군집에 대해 만족을 시켰지만 그 모객 군의 범위에 대해서는 조금 더확장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들고 그 깨달음을 남기고 싶어 다소 장황하게 글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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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ep looking, Don’t settle

이렇게 하나를 끝나고 나니 바로 새로운 프로젝트의 착공이 들어간다. 구산동 프로젝트 에서는 그 고객군에 대해 보다 대중적인 군집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서의 고민해 보고 시도해 보려 한다. 이렇게 맞물려 가다보면 쉴 시간이 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전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한 깨달음이 아직 내 몸과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때 바로 적용을 시켜볼 수 있는 점에서 감사해 하며 또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려 한다.  

글쓴이

James Jang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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