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20190131]

 

# 불안

한번 시작된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가끔은 그 고민의 정도가 심해 밤을 지새거나 심지어 헛구역질이 나오는 정도가 되기도 한다. 첫 사업을 했을 때, 퇴사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내가 가끔 겪는 일이다. 부끄럽지만 딱 그만큼이 내가 현실에서 부딪쳐야 할 무게이며, 현재의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일 게다.

한국에 돌아와 불안이 가장 극대화가 되었을 땐 첫 회사를 나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점수가 안 나와) 스스로 포기했을 때였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주변시선에 대한 걱정,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불안 등 여러가지 상황이 동시에 닥쳐 밤잠 못 이루고 지샌 눈으로 벚꽃 핀 한강부지를 정처없이 걷던 봄날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그 불안은 이후 신기하게도 연극을 통해 치유되었지만 말이다.

이전엔 이런 불안의 감정을 겪을 때마다 왜 난 참 나약할까 스스로를 탓하며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그쳤다면, 다행히도 지금은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 어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니 그저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1년 동안의 사유와 휴식이 내게 조금은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지난 겨울부터 계속 이어오는 난관들을 헤쳐나가며 내 안에 불안이란 감정이 종종 솟구쳐 오르는게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부디 벚꽃 필 무렵 한강공원에서 낮술 한잔과 써 내려갈 수 있길) 그나마 다행인 건 한 해를 쉬면서 버틸 체력이 회복되었는지, 불안이란 감정 속에 그저 두려워하기 보다는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지 집중하며 시간들을 견디며 문제들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본 한 벤처기업 대표님의 페북 글. 나랑 개인적인 연고는 없지만, 여러 번의 창업 실패 후 재기한 사업에서 IT서비스로 무려 해외 연매출 1000억 이상을 달성하고 있는 회사이자 창업자이기에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중압감과 산전수전들을 겪어왔을터.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17768874271458&id=1169424019

 

 

우스꽝스러웠지만, 숫자 8이 들어간 사무실로 이전했다고 일이 잘 됐으랴. 중요한 건 잘 될꺼라는 믿음을 주었다는데 있다고 판단했다. 마치 삼국지 조조가 “저 언덕만 넘어라. 거기에 살구가 있다” 라 외치며 무더위에 지친 병사들에게 군침이 돌게 해서 전진을 시켰듯이 말이다.

“믿음”을 주는 요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풍수로 번졌다. 좋은 사무실을 구하고, 좋은 배치를 하면 좋은 기운을 얻을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믿음을 통해 사람들이 불안감을 덜고 미래에 좀 더 낙관을 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원래 비즈니스는 불확실의 연속, 사람들은 늘 불안감 속에 작은 확률을 목표로 달려야 하니까.

 

정답이 없어 보이는 엄중한 비즈니스의 연속에서 ‘믿음’을 통해 막연한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매개체. 이 분께 그 매개체가 풍수였다면 나에게는 승가사와 108배가 아닐까 싶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불교신자가 아닌 내가 매주 절을 다니고 108배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첫 만남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께서 연락이 오셨다.

 

재영아, 니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승가사라는 절에 산신각이라는 법당이 있는데 친척 누나 말로는 서울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라네. 엄마 생각해서 시간 되면 한번 가보지 않겠니?

 

어머니 말씀이니 안 가볼 수 없기에 주말 아침을 맞아 나들이 겸 찾아가 보았다. 다음지도를 보니 북한산 기슭. 육안으로 보기엔 금방일 듯했는데 굽이굽이 농담 아니고 히말라야 오르는 줄 알았다;; 세상에 서울에도 이러한 산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1시간여의 산행 끝 승가사에 도착했다. 이런 산 기슭에 어떻게 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북한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절. 고려시대 때부터 유명하였고, 최근에는 육영수 여사가 다녔기에 서울에서 차량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산사 이기도 한다. (매일 8시-15시 승가사 전용 차량이 북한산 입구까지 운행된다) 재벌가 회장님들이 종종 오는 절이라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오랜만의 갑작스런 산행이 힘들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간단히 3배만 드리고 내려왔고 어머니 말씀 잘 들었다는 안도감에 승가사는 그렇게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 2018년 9월의 일이다.

 

승가사는 북한산의 정말 오묘한 위치에 있는 듯.


# 다시 오른 북한산

승가사를 가야고 다시 생각이 난 건 2018년 12월 한 겨울의 어느 저녁이었다. 첫번째 개발한 건물이 준공 후 한달 동안 임대가 하나도 되지 않는 상황 속에 불안이 가중되는 때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나가며 절실하게 염원하던 시기. 문득 승가사에 가서 108배를 하고 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108배에 대한 스토리는 여기서 https://bit.ly/2Gaz0e6 )

일요일 아침, 올라갈수록 가파른 추위를 뒤로하고 오른 북한산 정상과 다시 마주한 승가사 그리고 산신각. 108배를 하며 말하였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제가 자만했습니다. 제가 오만했습니다. 제가 거만했습니다. 부디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뜻의 여정을 펼치려 하는데, 이제 아주 조금 알 듯한데 지금 무너지게 되면 너무 억울합니다. 앞으로 과욕을 부리거나, 게으름을 부리면 더 큰 벌을 해도 좋으니, 이번 한번만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내 평생 그 어느 누군가에게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 적은 많았지만, 스스로의 성취를 직접적으로 기원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대놓고(?) 부탁을 드리게 된 것. 산과 염원 속에 조금은 평온해진 마음으로 다시 한 주를 준비하며, 달려나가며 이렇게 매 주 승가사를 가게 되었다.

 

 

#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조금은 평온해진 마음으로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며 분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 중 우선순위가 높은 것들을 정해 그 리스트들 순서대로 집중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임대표를 만들어 해당 지역의 가능한 한 많은 중개부동산 분들께 부단히 인사 드리며 물건을 소개하고, 부족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그와 관련된 투자소개서와 계약서 등을 만들고, 매일 건물을 쓸고 닦고 부족한 부분을 보수하며, 그러길 한달.

연말부터 조금씩 임대가 나가기 시작하더니, 1월 중순의 어느 날 하루에 8건의 계약이 성사가 되면서 정점을 찍게 되었다. 정말 이 날 하루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하늘을 나아갈 것만 같은 느낌. 이렇게 하나도 안 나가 맘 고생하던 임대는 어느덧 대부분의 호수가 계약되어 버렸고 걱정하던 자금흐름에 문제가 없게 되었다.

정녕 승가사의 힘 인가란 생각에 안도와 놀라움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매 주말 난 승가사를 방문해 108배와 함께 이야기 하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 끝난게 아니니 조금만 더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안이 경감되어 처음의 간절함보다 조금은 평온해 졌지만, 이게 게으름이 되지 않도록 저도 더 추스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이대로 무너질 수 없으니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점점 이러한 의식(?)은 나에게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나만의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 조급하지 말 것

조금씩 업그레이드 된 최근의 등반코스는 다음과 같다.

북한산 비봉 등반 – 점심식사 겸 독서 (비봉 정상) – 승가사 방문 – 명상 및 독서 (대웅전) – 108배 (산신각) – 하산

 

 

이러면 총 시간이 4시간 정도 걸린다. 7시에 간다고 하면 11시 쯤에 산에서 내려와 광화문 청진옥의 특양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으면 최고의 선데이모닝인데, 천성이 게을러 아침에 늦잠을 자 보통 10-14시 일정으로 다녀온다.

 

승가사는 비봉 정상을 오른 뒤 내리막의 중턱에 있다.
비봉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전경. 한강, 남산타워, 롯데월드타워 등이 보인다.
교과서에서 배운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신라가 서울까지 진출했다는 역사적 징표이다.
비봉정상에 앉아 서울전경을 보며 먹는 김밥은 꿀 맛이다.

 

 

# 마흔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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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읽게 된 책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 여러번 읽고 있는 책이다. 비봉 정상과 대웅전에서 계속 반복하며 읽어나가는 책에서도 강조하는 메시지로 절대 조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30대에는 야심과 에너지도 주체 못하고 방방 뛰는 경우도 많은데 오히려 그럴수록 일은 그르칠 가능성이 있으니 평온한 마음으로 정진하며 다가오는 기회에 전력 질주 할 수 있는 시기와 내공을 잘 포착하고 배양 해라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안개가 걷히게 되면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 어렴풋이 보이게 된다. 그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나름 나만의 요술방망이를 만나게 되어 참 반갑고 또 그 방망이의 효능을 떠나 함께하는 동안 좋은 결과들이 생겨 이 요술을 더 믿어 나가게 되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

부디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게 해달라는 승가사에서 외던 고승들의 주문. 여기에 게으름까지 덧붙여 탐욕, 노여움, 게으름, 어리석음을 없애며 더욱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나가길 바란다.

글쓴이

James Jang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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