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건설이요?
“안녕하세요? 파란건설의 장재영입니다” 하며 명함을 건내 드립니다. ‘네’ 하고 보다 뒷면을 넘기면 ‘풋’ 혹은 “음”하는 반응이 느껴집니다. “회사이름이 참 낭만적이네요”라는 맞장구부터, “살벌한 부동산 바닥에서 너무 애들 장난스럽지 않냐”는 염려까지. 이전의 동료들은 전 사업체의 초창기 명칭 (파이란즈 머플러)에서 따온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업에 계신 많은 분들은 시행사가 아니라 시공사로 생각을 하고 평당 얼마에(!) 짓는지 물어오곤 하십니다.
그래서 두 번째 이야기로 회사이름이 [파란건설]이 된 스토리에 대해 준비해 보았습니다.
- 아버지의 한 마디
업을 시작하며 맨 처음 회사이름에 대한 고민이 들었기에 한국에서 부동산 개발을 하는 회사들의 이름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xx개발, xx디앤씨, xxx건설, OO디벨롭프과 같은 뒷 마디에 금강, 한라, 골드 등 세련된 이름보다는 투박한 느낌으로 앞쪽을 채운 곳들이 대부분 이더라구요. 영문 네이밍으로 가는 곳들도 있긴 하였지만 극히 드문 편이었고, 오히려 그 이름이 구수할수록 매출이나 영업실적이 높은 상관관계가 살짝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참신한 젊은이의 패기로 세련된 영문 브랜드명으로 가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서는 기름기 쫙 다 빼고 무조건 업의 본질과 소비자 측에서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xx개발로 가닥을 정했을 무렵, 아들의 그간의 과정을 지켜보시던 건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하신 아버지께 한 마디 해주십니다.
“개발은 너무 한철 뜨내기 느낌 아이가? 묵직하게 건설로 가래이. 이번에도 한번 시작한 사업 오래 할거다 아이가?”
그래서 저는 OO건설로 가닥을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후미에 ‘건설’이라는 투박한 이름이 들어가니 그 앞단에 어떤 이름을 붙여도 소위 말하는 뽀대(?)가 나진 않았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쓸만한 단어들을 갖다 붙여 보아도 별 다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던 차, 문득 내가 봤던 연극 중 울림이 컸던 것들에서 모티브를 찾아보자는 발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연극으로 초대
연극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http://jangjaeyoung.com/2018/08/13/1/) 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간 반년 넘게 1주일에 최소 1편을 보아 오며 국내에서 그 해 공연하는 연극 중 괜찮다는 것들을 대부분 보게 되었고, 적어로 스스로 어떠한 스타일의 연극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의 감동들을 되새겨 보던 중 울림이 큰 공연 중 회사이름의 모티브로 쓸 가능성이 있는 연극 2개를 추리게 되었습니다.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백석우화>.
두 극단 모두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소위 쎈(?) 연극을 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자그마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집단입니다. 신세계의 <파란나라>의 경우 공동체의 집단의식의 문제성에 대해 우리에게 친숙한 동요 파란나라를 모티브로 풀어나갔으며, <백석우화>는 시인 백석의 삶을 이야기로 다룬 공연이었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건설해 나가고 싶은 앞으로의 포부와, 일제와 북한의 부당함 속에 자신의 창작욕을 삭히며 그렇게 일생을 마감한 백석의 신념을 회사의 이름에 녹아내리고 싶었기에 후보군은 최종적으로 “파란건설”과 “백석건설”로 추리게 되었습니다.
- 억척 연출과 미투한 자식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차, 2018년 초 연극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연출이 신체훈련을 빌미로 한 극단 여자 배우들에게 연출과 임원들에게 마사지를 시킨 일들이 내부제보로 드러나며 세상은 눈과 함께 ME TOO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부조리한 일에 대해 세상에 알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찾아가는 한편, 공공의 큰 적이 해결된 한국민들은 이제 여와 남이라는 또 다른 작은 혐오로 서로를 편가르는 숙제도 가지게 되었고요. 연희단거리패의 연극계의 위상은 실로 엄청난 것이기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 파장은 너무나 컸으며, 연극에 실망한 관객들은 대학로를 떠나게 되고 저 또한 상당한 실망과 아쉬움 속에 몇 달 간 공연을 보러가지 않았습니다.
(source : chosun.com)
그렇게 회사 이름에 대한 고민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려는 찰나, 그럼에도 제게 연극은 소중한 존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 쉽사지 마음 내어주고 감동받으며 부메랑 같은 실망감을 느끼진 않겠다는 다짐, 살아가며 이러한 애호를 또 찾을 수 있을까라는 애정. 그렇게 걱정해 대한 자기 부동과 연극에 대한 애정 속에 회사이름은 자연스레 “파란건설”로 결정 되었습니다.
- 꿈과 희망이 가득한 파란나라, 파란건설
BLUE CONSTRUCTION과 BLUU D&C에서 고민하던 영문명은 지인의 제안으로 BLUE GROUND 라는 멋진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고, 도메인을 등록하고, BI 디자인 하는 등 회사 설립의 기초를 위한 것들을 차근차근 쌓아나갔습니다.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컬러링을 <파란나라> 동요로 하고 싶었는데 저작권협회 등록이 안 된 곡이라 구매할 수 없었네요ㅎㅎ)
“어떻게 동요 따위를 회사이름으로 삼느냐”는 어느 부동산 어르신의 질책에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압니다 영감님.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 그 어떤 세계보다 험악하고 살벌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이런 전쟁터에서 꽃 한 송이 보며 웃는 찰나의 여유조차 없다면 그 살벌함을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꽃 한 송이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며 지향해야 할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요?”
꿈과 희망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만들어 나가며, 새롭게 인사드리는 업에서의 파란(波瀾)을 일으켜 나가고 싶은 작은 다짐을 담으며, 파란만장한 새로운 길을 고대하며.
파란건설과 함께 그 초심을 유지해 나가고 싶습니다. 나가고자 합니다.